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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뮤지컬 <들풀2> 기사
작성자 극단모시는사람들
작성일자 2014-03-12
조회수 4585
추천수 1503

'들풀'이 꿈꾸던 세상, 아직 오지 않았다

[황인선의 컬처톡톡] 창작뮤지컬 '들풀'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입력 : 2014.06.21 13:35



내가 약해졌나보다. 눈물이 자꾸 흐른다. 감정이입도 잘 되나보다. 120년 전 공주 우금치의 붉은 하늘과 함성이 떠오르면서 먹먹해진다. 녹두밭에 앉은 파랑새 부대가 빨간 총구와 대포를 때 묻은 옷 흰 옷 백성들에게 퍼붓는 것도 얼핏 보이니 이제 신통해지기까지 했나보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21자 삼칠주(三七呪)를 외면서 '우리가 한울이여', '암 그렇구먼', '그려. 이제 죽어도 원이 없어' 외치면서 1894년 12월 혁명을 향해 달려갔을 1만 민초들이 환영처럼 보인다.

그렇게 동학 혁명 120주년 기념 창작 뮤지컬 '들풀'을 보았다. 20년 전에도 공연됐던 뮤지컬이다. 2시간 40분 슬펐고 분노했고 답답했다가 마침내는 마음이 편해졌다. 먼지 같은 삶에 갇혀 잊었던 내 나라 역사가 슬펐고 민중들, 비열한 권력들은 그제나 이제나 왜 저런지 분노하며 답답했고 그리고는 굿판 한 번 치른 무당마냥 숨이 편해졌다.

'밥이 나가신다'의 흥과 '사람을 찾습니다'의 억장 무너짐 그리고 주인공인 남원의 비장과 남장 기생 군자홍의 '그대가 내 하늘' 사랑 씬과 '사랑을 해도 별이 지고 그리워해도 별은 뜬다' 뮤지컬 넘버를 넘어서면 예상치 못한 씬이 하나 나온다. 엉겁결에 농민군에 휩쓸린 양반과 '나리, 등에 업히세요'를 연발하는 노비 아범 씬은 특별했다. 그 씬이 없었다면 뮤지컬은 사회주의 혁명극 아류일 수도 있었다. 양반과 노비의 믿음이 가당키나 한 발상인가? 그러나, 그래서 보편적 사랑과 성찰이 결여된 이데올로기 극 한계를 넘어섰고 그래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농민군은 나리를 욕보이는 개나리 타령을 부르면서 양반을 멱살 잡고 짓밟지만 아범은 나리를 온몸으로 지켜낸다. 마침내 양반의 피 맺힌 절규 "그래 나 양반이여. 너희랑 다를 몸뚱이 없는. 나도 윗 놈들한테 뜯기고 너네 동학군들한테 남은 쌀마저 다 뺏긴 그런 양반이여··· 나도 살고 싶지 않어." 숙연해진 농민군. 아범은 나리를 업고 뚝뚝 걸어 나온다. 투박한 노래가 이어진다. 아범은 나리가 도령이었을 때 서당을 업고 다녔나 보다.

♬ 하늘 천 따 지, 서당 갈 때에
가물 현 누루 황, 민들레 꽃 하나
집 우 집 주 피어 있었죠.
아범이 등 뒤 나리에게 말한다. "나리, 그때 우린 콩도 나눠먹었었죠." 나리가 등에 몸을 붙이면서 답한다. "그려 아범, 그때 그랬지" 둘은 다시 노래한다.

♬하늘 천 따지 서당 갈 때에···

이 씬에 '저 아범, 뼛속까지 노비 근성'이라고 할 것인가. 사람 사는 게 뭐고 혁명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그날 공주 우금치 실제 전투에서 1만 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의 화력 앞에 모두 패하고 500명만 살아남았다. 뮤지컬은 시작도 끝도 죽음. 처음은 전봉준 그리고 마지막은 남원 비장의 처형으로 끝이 난다.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 노래는 공연 내내 절제된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젊은 친구들이 꽤 많다. 내 뒤에서 흐느끼던 소리가 그들 것이었나 보다. 그들이 이 역사를 그들의 노래로 다시 잇기를 바란다.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 모시는 사람들이 기억시킨 '들풀'.

나는 바로 전날 대형 뮤지컬을 봤었다. 화려한 무대, 뛰어난 가창력, 눈부신 조명과 의상, 현란한 연출이었다. 그러나 흥으로 어깨 들썩, 흑흑 눈물로 존재이입하고 극이 끝나도 일어나기 어려웠던 것은 가난한 그 극단이 다시 쓴 '들풀'이었다. 바람이 불면 누웠다가 바람이 잦아들면 일어섰다가 분노하면 들불로 산야를 훨훨 태워버리는 착하고 무서운 들풀. 다음 날 '친구들하고 꼭 봐라' 돈 쥐어 보낸 중3 아들이 밤에 돌아와서 흥얼거리는 노래는 왜 이 노래였을까?

♬ 하늘 천 따지 서당 갈 때에
가물 현 누루 황 민들레 꽃 하나
집 우 집 주 피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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